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5차 초공작전 (문단 편집) === 중앙소비에트지구의 포기, 그리고 대장정의 시작 === 한편 장제스는 홍군이 이제 끝나감을 알고 6월까지 루이진을 함락시키기 위해 5월 하순 천청의 3로군을 광창에서 석성으로, [[쉐웨]]의 6로군을 용강에서 고룡강으로, 장정문의 동로군을 장정으로 진격하라고 지시했다. 세 방향에서 루이진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7월 9일 6로군은 천부산을 점령하고 홍군의 방어거점인 역전에 도달했다. 홍군은 1군단과 3군단에서 차출한 부대와 7군단을 내보내 천부산을 탈환하려 했다. 천부산을 방어하던 14사단은 잠시 후퇴했다가 증원군을 대거 거느려 천부산을 탈환했고 홍군은 패퇴했다. 홍군은 역전 북쪽 대령격에서 20리에 걸친 토치카 진지와 참호를 건설하고 국민혁명군에 저항하려 했다. 8월 14일 국민혁명군 67사단이 포병대와 공군의 지원을 받으며 정면공격을 시도했으나 홍군의 맹렬한 저항에 2개 대대를 잃었다. 이에 정부군은 진격을 중지하고 12문의 신식 산포를 증원받으며 대기했다. 8월 28일 산포를 지원받은 정부군은 다시 대령격을 공격하여 점령했고, 31일에 역전을 함락시켰다. 사태가 불리해지자 홍군은 전매특허인 항일을 들먹이면서 7월 15일 '노농홍군 북상항일선언'을 발표하여 장제스가 항일 대신에 공산당을 잡는데 혈안이 됐다고 비난하고 7군 19사단 소속 7천명의 병력으로 소위 항일선발대라는 부대를 편성하여 복건 남서부에서 포위망을 뚫어보려 했다. 이들은 복건 방면의 포위망을 돌파하여 방지민의 10방면군과 합류, 전략배후지를 위협하여 루이진의 숨통을 트여주려 했다. 이들을 추격하기 위해 국민혁명군이 분산되어 주력홍군이 탈출할 기회를 만들어주게 되었다.[* 방지민의 이 항일선발대는 1935년 초에 완전히 소탕되었고 방지민도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머리는 참수되어 광주리에 넣어져 전시되었다고 한다.] 8월 상공근거지의 소극이 지휘하는 6군단도 혁명군사회의의 명령에 따라 항일전쟁의 구호를 내걸고 포위망을 뚫고 호북, 호남, 사천의 접경지역에 머물고 있는 허룽의 2군단과 10월에 합류하여 2방면군을 편성했다. 이 와중에도 홍군 16사단이 국민당에 투항해버렸다. 8월이 되면 1930년에 평균 26그램 정도였던 일일 소금 섭취량이 1.6그램으로 떨어지는 등 국민당의 경제봉쇄의 여파가 심각하였다. 소금의 극심한 부족으로 홍군은 시체에 소금을 숨겨서 관짝을 통해 밀수하고 소변을 졸여서 소금을 보충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9월 말, 중앙병기창, 피복공장, 인쇄공장 내부의 반출 가능한 기계가 모두 철거되었고 이동이 불가능한 대형기계들은 모두 파괴했다. 중요 서류, 재봉틀, 인쇄기 등도 반출되는 등 루이진 내부에선 탈출 준비가 한창이었다. 10월 4일 북로군이 남진하여 석성을 함락시켰고 13사단을 지휘하던 공하총, 4사단을 지휘하던 장익이 잇달아 국민혁명군에 투항했다. 10월 14일 홍군은 루이진을 포기하고 철수할 것을 결의했다. 저우언라이는 그제야 마오쩌둥에게 루이진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계획을 통보했다. 위두에서 홍 제1군과 함께 거주하며 말라리아로 투병하던 마오쩌둥은 아내 허쯔전은 데려갈 수 있으나 두살된 아들인 마오안훙은 두고 가야 한다고 통보받았다. 마오쩌둥과 허쯔전은 마오안훙을 처제인 허이에게 맡겼지만 다시는 아이를 볼 수 없었다. 홍군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상태에서 허겁지겁 중앙 소비에트를 탈출해야 했다.[* 장정이라는 이름도 이땐 없고 서정이라고 부르는 정도였다.] 10월 10일 중앙홍군은 전략방침을 변경했다. 10월 15일 공산당 중앙과 중앙혁명군사위원회가 모두 루이진을 필사적으로 탈출하였고 10월 16일 각 부대는 강서 우도하의 집결지로 모였다. 홍 1군, 3군, 5군, 9군으로 구성된 5개 군단 8만 6천명의 병력과 기관이 탈출을 시작했고 이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해 항영과 천이가 지휘하는 1만 6천명의 잔존부대가 저항했다.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루이진을 다시 탈환할 것이라 믿었지만 나와보니 상황이 별 수 없는지라 공산당은 끝없는 서천의 길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